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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공개] [이순신 경제전쟁에 승리하라](전경일): 상시적 대비책으로 전략적 유..

    상시적 대비책으로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하라 1592년 4월 13일 오후 부산 앞바다에 나타난 적은 이튿날인 14일 부산진을 점령하고, 15일 동래부를 함락시킨다. 5월 3일에는 서울을, 28일에는 임진강을 건너 6월 15일에는 평양을 점령한다. 부산을 치기 시작해 개전 20일 만에 서울이 무참히 무너지고, 2개월 만에 개성, 평양까지 빼앗기는 등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전개된 것이다. 일일 평균 26km의 놀라운 속도로 적이 북상한 셈이니 특별한 저항 없이 통과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임란 초 우리는 어떻게 해서 이렇다 할 방어 없이 밀리게 된 것일까? 임란 전 전쟁 발발을 두고 조정 내부에서는 이견과 혼란은 있었으나, 나름 전쟁에 대한 대비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589년 1월 조정에서는 불차탁용으로 이순신을 비롯해 무신들을 천거하기도 했으니 난의 낌새..
    인문경영연구소|2011-11-15 07:15 p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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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이순신, 경제전쟁에 승리하라](전경일): 위기의 현실화

    위기의 현실화 1592년 4월 13일 왜군 158,700명이 부산포에 상륙하는 것을 시발로 임진왜란은 발발한다. 마침내 우려했던 전란이 터진 것이다. 이순신은 바로 보름 전인 3월 27일에야 대포 쏘는 시험을 했고, 하루 전에는 지자포와 현자포 발사 훈련을 했다. 그야말로 폭풍이 몰아치기 직전 간신히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전쟁 개시 바로 전까지 부족하나마 준비역량을 강화했다는 점에서 우리로서는 불행 중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이때는 이순신이 전라좌수사에 부임한지 1년이 되는 때였다. 그렇다면 이 1년은 장군이 전란을 준비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을까? 이 짧은 기간 동안 장군은 어떻게 해전에 대비해 우리 수군의 준비상태를 파악하고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었을까? 이순신의 관직 경험을 보면, 발포만호 시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육전에서..
    인문경영연구소|2011-11-14 09:07 a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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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통섭] 작은 지식이 세상을 구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지식이 존재하고, 그 지식은 나름 쓰임새가 있다. 어떤 지식은 우리가 말하는 이른바 ‘지식인’들만의 것이 아닌,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지식이다. 이런 작은 지식은 때로 생명을 구하는 등 위대한 결과를 가져오곤 한다. 이런 이야기는 2004년 12월 26일 인도네시아 북 수마트라 서쪽에서 지진이 일며 쓰나미나 몰아닥쳤을 때 충분히 입증되었다. 그날, 규모 9의 지진은 8분 동안이나 격렬하게 흔들며 그 지역 일대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수마트라에서는 앞뒤로 흔들리고 동시에 엘리베이터의 하강 가속도보다 훨씬 빠른 상하진동 때문에 서 있기조차 어려웠다. 무너지는 주변 건물에서 피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했다. 해저가 갑자기 상승해 생긴 큰 파도는 항공기 속도인 시속 700킬로미터 이상으로 이동해 15분 만에 ..
    인문경영연구소|2011-11-01 09:03 a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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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이순신](전경일 소장) 임박한 전란과 준비역량

    고향으로 내려온 이순신은 45세 되던 해 1월 다시 나라의 부름을 받는다. 조정에서 임진왜란의 낌새를 알아차리고 준비하려는 것과 북방을 안정시키려는 목적으로 ‘불차탁용(不次擢用)’을 한 것이다. 불차탁용이란, 쓸 만한 무신을 특별히 관직의 서열을 밟지 않고 천거해 채용하는 것을 말한다. 당시 이순신은 북방지역의 전공으로 서열 2위에 올라 있었다. 하지만 그는 천거되지 않았다. 대신 전라감사 이광의 군관으로 임명된 후 조방장을 겸임하게 된다. 이후 잠시 선전관으로 재직하다가 유성룡의 추천으로 정읍현감에 임명된다. 정읍현감은 이순신이 쌓아가는 경험 중 대단히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그 무렵 정읍 현감 직을 수행하며 장군이 터득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첫째, 이순신은 치민(治民)의 명성을 얻게 된다. 백성을 다스리는데 그 대상..
    인문경영연구소|2011-10-31 04:20 p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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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공개] [전경일의 신간] 이순신, 경제전쟁에 승리하라

    제가 이번에 신간을 냈습니다. 한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순신, 경제전쟁에 승리하라 2012년은 임진왜란 7주갑이자, 420주년이 되는 해! 경제전쟁의 승리자로 돌아온 이순신! 21세기 경제위기시대, 우리는 왜 이순신을 찾는가? 치열함과 탁월성의 경영, 경영학의 교범으로 이순신을 만나다. 필사즉생의 ‘이순신 정신’으로경제위기시대 글로벌 도전을 넘어 설 해법을 찾다! ………………………………………………………………………………………………………………………………. 기존에 알고 있는 ‘이순신 지식’은 거부한다! 통찰과 통섭의 시각으로 바라본 이순신 경제전쟁과 임진왜란의 전모를 밝히다! 거북선 R&D 센터 ‘골든 트라이 앵글’의 비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승리의 중심에 거북선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
    인문경영연구소|2011-10-26 02:29 p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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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이순신] 작은 첫출발과 원칙주의

    이순신의 첫 출발은 화려하지 않았다. 무과 병과에 합격한 후 첫 관직은 마땅히 정9품인 효력부위(效力副尉)여야만 했다. 그러나 종9품인 권관에 임명되고 만다.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조선시대 서반의 품계는 18품 30계로 되어 있다. 7, 8, 9품은 부위, 5, 6품은 교위, 3, 4품은 장군, 1, 2품은 대부로 되어 있다. (35~37쪽 〈조선시대 서반의 품계와 대한민국 현재 직급체계 비교〉 참조) 관직 초기부터 불이익이 함께 했지만, 장군은 이를 원망하거나 불만삼지 않았다. 오히려 피나는 자기 노력의 기회로 삼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실력주의는 현실을 헤쳐 나가는 열쇠가 된다. 장군에 대한 일화가 있다. 첫 관직인 권관 때의 일이다. 당시 감사로 있던 이준백이 자기 관할 하에 있는 여러 진을 순행하면서 변방 장수들에게 활쏘기를 시킨 적이 있다. ..
    인문경영연구소|2011-10-11 04:52 p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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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이순신] 이순신 장군의 통섭적 상상력

    필자는 휴가를 이용해 남해 한려 수도 일대를 돌아보았다. 집필과 관련된 여행이었지만, 나름 휴가를 자청한 여정이기도 했다. 남해 일대에 들어서는 순간,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유적지가 이토록 많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 정도로 ‘이순신’은 가까이 있었다. 400여 년 전의 조선의 삼도수군통제자였던 이순신을 만나며 남다른 생각을 하게 됐다. 23전 23승의 무결점 완벽 승리야 익히 아는 바이지만, 승리의 원천을 만들어 낸 ‘이순신적’ 힘은 어디서 온 것일지 궁금했다. 돌아와 자료도 찾고, 쓰던 글편들을 다시 훑으며 이순신적 힘은 인문과 타학문 분야가 결합된 ‘통섭형 발상’에 있음을 알게 됐다. 예를 들어 보자. 우리가 익히 아는 거북선은 조선수군의 주력 함선인 판옥선과 함께 핵심 전선인데 배의 건조 방법이 특이하다. 거북..
    인문경영연구소|2011-10-06 07:00 p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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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공개] 이순신 장군과의 만남

    나는 장군을 만난다. 그 첫 걸음을 장군의 생애를 돌아보는 일로 시작한다. 이순신의 생애를 돌아보는 작업은 자칫 흐트러지기 쉬운 경영자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마음마저 숙연해지고 담대해 진다. 장군은 어떤 성장과정을 겪었을까? 성장기, 남다른 우여곡절은 없었을까? 장군의 삶의 장대한 완결판을 보기 위해 나는 그 조촐한 첫출발로 돌아가고자 한다. 처음과 끝이 일관된 리더십은 출발점에서부터 대한민국 경영자들과 함께 한다. 이순신은 1545년 3월 8일 서울 마르내골(건천동)에서 태어났다. 자는 여해(汝諧), 이름은 순(舜). 중국 고대 성군인 순임금을 벤치마크 한다는 뜻에서 순신(舜臣)이라 지었다. 장군은 여덟 살 되던 때 충남 아산의 어머니 친정 동리로 이사해 글방을 다닌다. 집안의 경제적 어려움이 이사를 가게 된 배경이다. 장군은 어렸..
    인문경영연구소|2011-09-30 09:15 a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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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인조_치욕을 갚는 방식을 네가 정령 몰랐단 말이냐?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인조 정부는 눈가리개가 씌워져 있는 양, 무모하게 명분론에만 집착했다. 이전 정권인 광해군 정부의 모든 것을 지워버리듯 대외정책에서 무리수를 두기 시작한다. 내부에서는 논공행상의 불협화음이 나타나 이괄의 난을 불어온다. 새로 집권한 세력에겐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생각 외에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해서 백성들은 반정공신을 향해 “너희들과 (광해군 정부) 사람들이 다를 게 뭐냐?”고 반정공신들을 풍자하는 상시가(傷時歌)가 회자될 정도였다. 선조 이후 조선을 분열과 전화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인조를 만나본다. -왕께서는 광해군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았는데, 국정 운영이 너무 형평성에서 멀어진 감이 있고, 권력의 독점 현상으로 결국 이괄이 난을 일으켰었는데요. “왜? 내가 아무 노력도 안했..
    인문경영연구소|2011-09-14 11:57 a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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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광해군_과연 명분으로 백성들을 살릴 수 있단 말이냐?

    서자로서 임금이 된 아비 선조는 자신의 서자에게 가혹하기만 했다. 임진왜란이란 초유의 전란 중에 조정을 둘로 나누는 분조를 이끌면서 실질적인 국왕으로서 전란을 관리해 냈지만, 왕이 될 기회마저 박탈당할 뻔한 광해군. 선조와 더불어 역대 조선 국왕 중에 가장 긴 기간 동안 궁궐 밖에서 보냈고, 몸소 전란의 현장을 뛰었으나 그에게는 운명적으로 명분에 가로 막힌 조선이라는 현실의 벽이 가로 막고 있었다. 조선의 15대 국왕, 광해군을 만나본다. - “하늘이 한 세대의 인재를 내는 것은 그들로서 한 세대의 임무를 완성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요즘 사대부들은 논의가 갈라져서 명목을 나누고 배척하는 데 거리낌 없으니 이제는 피차를 막론하고 어진 인재만을 거두어 시대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야 하리라.” 임금께서는 기억나시나요? ..
    인문경영연구소|2011-09-14 11:52 a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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