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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독서신문 글쓰기 강좌] '내 인생의 책 한권 쓰기' 수강생 모집
[독서신문 글쓰기 강좌] '내 인생의 책 한권 쓰기' 특강… 전경일 소장 "참신한 기획에 감동의 메시지 담아라" 강조 9월 29일까지 수강 신청 접수…10월 11일부터 12월 27일까지 매주 수요일 저녁 진행 [독서신문]독서신문과이뉴스투데이가인문경영연구소(소장전경일)와손잡고진행하는'내인생의책한권쓰기'특강이20일서울서초구양재동서울미디어그룹빌딩에서참석자들의열띤관심속에개최되었다. 이번특강에서전경일소장은등단작가이자베스트셀러저자로서의노하우를공유하며한권의책이착상에서부터출판기획,출간,판매유통되기까지각단계별핵심포인트를다양한사례를들어설명했다. 전경일소장. 전소장은“글쓰기가단순한착상에서시작하는데독자들에게읽히고팔리는책이되기위해서는원석이다이아몬드로만들어지는과정을거치듯초고가..추천 -
[비공개] [공지] '내 인생의 책 한권 쓰기' 수강 접수 안내
[알림] 독서신문 글쓰기 강좌 '내 인생의 책 한권 쓰기' 수강 접수 중...9월 29일까지10월 11일부터 12월 27일까지 매주 수요일 저녁 진행...9월 20일엔 무료특강도 독서신문은10월11일부터매주수요일마다서울서초구양재동서울미디어그룹빌딩에서열리는'내인생의책한권쓰기-독서신문과인문경영연구소가함께하는글쓰기학교'(이하글쓰기학교)의수강신청접수를받고있다.글쓰기학교는47년전통의독서신문이최근높아지고있는글쓰기에대한관심을반영하고독서신문의독자들을‘독자에서저자로’이끌기위해마련됐다. 글쓰기학교는전문작가의직접지도하에깊이있는글쓰기훈련을통해자신의이름으로된이른바'인생책'을펴낼수있다는점에서여타강좌들과는질적으로다르다.강좌커리큘럼은글을쓰기위한자기검토에서부터내게맞는글쓰기,각장르별글의특징과..추천 -
[비공개] [공지] '내 인생의 책 한권 쓰기' 수강 접수 안내
[알림] 독서신문 글쓰기 강좌 '내 인생의 책 한권 쓰기' 수강 접수 중...9월 29일까지10월 11일부터 12월 27일까지 매주 수요일 저녁 진행...9월 20일엔 무료특강도 독서신문은10월11일부터매주수요일마다서울서초구양재동서울미디어그룹빌딩에서열리는'내인생의책한권쓰기-독서신문과인문경영연구소가함께하는글쓰기학교'(이하글쓰기학교)의수강신청접수를받고있다.글쓰기학교는47년전통의독서신문이최근높아지고있는글쓰기에대한관심을반영하고독서신문의독자들을‘독자에서저자로’이끌기위해마련됐다. 글쓰기학교는전문작가의직접지도하에깊이있는글쓰기훈련을통해자신의이름으로된이른바'인생책'을펴낼수있다는점에서여타강좌들과는질적으로다르다.강좌커리큘럼은글을쓰기위한자기검토에서부터내게맞는글쓰기,각장르별글의특징과..추천 -
[비공개] 불신불측(不信不測) 기만과 불예측성으로 상대를 혼란에 빠뜨린다
불신불측(不信不測) 기만과 불예측성으로 상대를 혼란에 빠뜨린다 왜구의 특징은 기만과 불예측성이다. 이는 군사 작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왜구 침구 전략으로 눈에 두드러진 것은 기만전술인데, 1375년 왜구는 무리들 가운데 노약자들만 태워 싸우지 않고 곧 철수할 것같이 행동해 고려군의 방비를 허술하게 하도록 한 다음 은밀히 정예군 수백 명을 고려군 배후로 침투시켜 노략질을 감행했다. 왜구의 이런 기만전술에 말려들어 고려군은 싸울 때마다 번번이 패했고, 왜구가 온다는 소리만 듣고서도 앞을 다투어 달아났다. 손자병법에는 “병(兵)은 속임수(詐)로써 서고, 이(利)로써 움직이며 분합(分合)으로써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는 구절이 나온다. 왜구가 중앙의 조직적인 지지, 지휘, 조종내지 지시 하에 움직였다는 것은 왜구의 침구 방식..추천 -
[비공개] 불신불측(不信不測) 기만과 불예측성으로 상대를 혼란에 빠뜨린다
불신불측(不信不測) 기만과 불예측성으로 상대를 혼란에 빠뜨린다 왜구의 특징은 기만과 불예측성이다. 이는 군사 작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왜구 침구 전략으로 눈에 두드러진 것은 기만전술인데, 1375년 왜구는 무리들 가운데 노약자들만 태워 싸우지 않고 곧 철수할 것같이 행동해 고려군의 방비를 허술하게 하도록 한 다음 은밀히 정예군 수백 명을 고려군 배후로 침투시켜 노략질을 감행했다. 왜구의 이런 기만전술에 말려들어 고려군은 싸울 때마다 번번이 패했고, 왜구가 온다는 소리만 듣고서도 앞을 다투어 달아났다. 손자병법에는 “병(兵)은 속임수(詐)로써 서고, 이(利)로써 움직이며 분합(分合)으로써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는 구절이 나온다. 왜구가 중앙의 조직적인 지지, 지휘, 조종내지 지시 하에 움직였다는 것은 왜구의 침구 방식..추천 -
[비공개] 적시장서(適時場噬) 침구 시점과 장소를 노려 물어뜯고 확장한다
적시장서(適時場噬) 침구 시점과 장소를 노려 물어뜯고 확장한다 유사 이래 왜구의 오랜 침구에는 변하지 않는 확고부동한 목표가 있다. 바로 ‘약탈’이다. 왜구 약탈사는 끈질기며 활동상은 국제적이기 조차 하다. 한반도를 주요 목표로 하여 중국과 멀리 동아시아 일대로 확대된다. 일본이 양산해 낸 왜구는 고대 시기로부터 동아시아 세계가 공유하고 있는 평화의 바다라는 곳간[倉]에 마치 쉴 새 없이 쥐떼를 풀어 놓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왜구 활동은 우리에게는 900여회의 침구와 한 번의 임진왜란, 한 번의 강제 병합으로 귀결된다. 왜구 침범 기사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서기 391년을 기준으로 정유재란이 끝나는 1598년까지 1207년간, 을사늑약이 체결되는 1910년까지는 1519년, 해방 시까지 따지면 무려 1554년이라는 장구한 시간 동안 왜구는 지속..추천 -
[비공개] 쟁지선점(爭地先占) 잦은 침구로 주변국의 결정적인 목을 노린다
쟁지선점(爭地先占) 잦은 침구로 주변국의 결정적인 목을 노린다 고려시대 왜구의 주요 침구 대상지역은 남해안 지역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점차 활동범위는 넓혀져 서해와 연안지역으로 확장된다. 이곳은 곡창지대와 조운선(漕運船)의 통로로 매우 중요한 길목이었다. 왜구가 ‘조운선 이동 루트’를 목표로 했다는 것은 왜구 전술이 항시 주요 목을 겨냥하고 있는 걸 잘 보여준다. 왜구는 수도인 개경 인근의 승천부(昇天府), 강화, 교동까지 자주 출몰해 약탈과 방화를 자행했다. 그로인해 수도 개경이 위험해지고, 여러 차례 계엄령이 발동되었으며, 심지어는 천도론(遷都論)까지 나온다. 왜구의 발호에 따라 고려는 지역방어와 토벌작전에 주력했다. 하지만 왜구의 규모가 점차 대형화되고 빈도가 증가함에 따라 특수토벌군을 편성하거..추천 -
[비공개] 구사협갈(驅使脅喝) 위협과 공갈로 광포한 이중 전략을 구사한다
구사협갈(驅使脅喝) 위협과 공갈로 광포한 이중 전략을 구사한다 1375년(우왕 원년) 5월 왜장 후지 쓰네미쓰(藤經光)는 부하들을 인솔해 쳐들어가겠다고 공갈하며 식량을 요구한다. 이에 고려 정부는 이들을 회유해 식량을 주고 순천과 연기 등지에서 살게 했다. 그런데 이 일은 결과적으로 왜구가 더욱 포악해 지게 되는 원인이 된다. 그 원인을《고려사》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밀직부사(密直副使) 김세우의 명령으로 김선치(金先致)가 일본 해적 쓰네미쓰 무리를 유인해 죽이려다가 실패하고 난 뒤부터 왜구들이 사람과 가축을 살해하고 침구시마다 더욱 광포하고 잔악하게 부녀자와 어린아이까지도 살상했다. 왜구는 한번 침구하면 인명을 남김없이 살해해 전라도와 충청도 연해의 주군(州郡)은 텅 빈 상태가 될 지경이었다. 고려의 불철저한..추천 -
[비공개] 침용소분(侵用消紛) 내외부 혼란을 통해 자국의 분란을 해소한다
침용소분(侵用消紛) 내외부 혼란을 통해 자국의 분란을 해소한다 1359년 고려에 침구한 왜구는 이 해 5월을 고비로 기세가 다소 수그러들었다. 왜구 발호로 국가적으로 치명적인 내상(內傷)을 입은 고려로서는 잠시나마 숨을 고를 수 있는 휴식기에 해당된다. 그러나 여우를 피하자 범이 나타난다고 그 해 11월에 접어들자 고려는 또 하나의 외침 세력인 홍건적의 대대적인 침입을 받게 된다. 이를 ‘제1차 홍건적의 난’과 이에 대응한 ‘홍건적 토벌전쟁’이라고 부른다. ‘북로(北虜)’로 말미암아 고려는 핍진한 군사력을 모아 홍건적 토벌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방력이 북으로 향하자, 왜구는 이를 기화로 대거 침구를 감행해 온다. 왜(倭)로서는 고려의 국란은 간절히 바라던 바였고, 약탈의 절호의 기회였다. 고려가 가까스로 홍건적을 격..추천 -
[비공개] 왜구, 전쟁으로 전쟁을 말하다
왜구, 전쟁으로 전쟁을 말하다 고려와 조선을 연이어 붕괴시킬 버릴 정도로 극악스러웠던 왜구. 이 광포한 약탈․살인 집단은 우리에게는 일본이란 나라의 이미지와 그대로 클로우즈 업 된다. 900여회나 되는 국지전과 전면전을 치룬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왜구와 일본을 동일시하는 인식을 가져왔다. 오늘날 한․일 관계의 깊은 감정의 골도 여기에 뿌리를 둔다. 이 점은 한반도를 대상으로 일본이 지속적으로 야기한 침구가 원인이었고, 그로 인해 생긴 ‘불편한 관계’라는 점에서 ‘일본 책임론’으로 귀결된다. 더불어 우리의 인식도 담금질될 필요가 있다. 왜(倭)를 심리적 혐오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자칫하다간 임진왜란 이후 사대부층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진 명분론처럼 ‘감정’에 치우칠 위험성마..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