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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중환자실 7번 병상 - 행복한 달팽이 No.24
커튼과 공중에 매달려 있는 커튼레일의 위치로 병상끼리의 경계는 구분된다. 보호자들은 대개가 그 경계를 지킨다. 경계 안 자기들만의 영역에서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살아나려 하고 살려내려 한다. 한 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죽음의 문턱에 있는 인간은 죽거나 되살아나거나 한다. 환자와 가족에게 최대의 집중을 요하는 최소의 희망공간이다. 중환자실은 지나치리만치 조용하다. 가끔씩 흐느끼거나 누군가의 이름을 조용히 부르는 소리 말고는 다른 잡음이 없다. 할애된 면회 시간 동안 구경할 수 있는 중환자실은 고요하고도 평온하여 사람 없는 성당의 예배당 같은 분위기다. 아버지와 나는 우리에게 배정된 공간 8번 병상에서 설익은 대면.......추천 -
[비공개] 내가 아는 부자들 2편, 아내 - 행복한 달팽이. No.23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밴드 연습은 늘 밤 열 시가 넘어야 끝났다. 실컷 두드리고 목청껏 지르고 나서 정리하고 나면 늘 속이 출출했다. 그냥 헤어지기 서운한 멤버들은 대개 야식집을 찾아 그날의 연습 내용과 일상 속의 이야기를 한 잔 술과 함께 나누었다. “이제 감자탕도 입에 물린다, 다른 데 좀 없을까?” “심야영업을 하는 데가 여기밖에 없어. 아니면 먼 데로 가야 되고.” 늘 이런 아쉬움 속에 주야장천 돼지 뼈다귀만 쪽쪽 빨고 있을 때였다. 연습 시간 중에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 오늘은 연습 끝나고 야식집에 가지 말고 집으로 와요. 과메기로 술상 봐 놓을 테니까 멤버들하고 와서 한 잔 해요. 그렇다고 너무 큰 기대는.......추천 -
[비공개] 내가 아는 부자들 1편, 어머니 - 행복한 달팽이 No.22
“엄니 김치 맛이 그리워서 왔시유. 고등학교 다닐 때 엄니가 싸 준 김치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어서 지금도 생각나는 걸 어떡해유.” 충남 서산이 고향인 병국이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서울에서 대전으로 출장을 왔다가 오랜만에 만났다. 함께 저녁 겸 술 한잔을 하다가 병국이는 나의 어머니를 찾아가서 꼭 인사를 드려야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늦은 밤에 부모님 댁에 들어갔다. 부모님에게 큰 절을 하고 난 병국이가 고등학교 시절 먹었던 어머니의 김치 이야기를 꺼내며 너스레를 떤 것이다. 어머니는 그런 병국이를 재밌어하면서도 고마워했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어머니는 언제나 김치를 우리 먹을 것보다 훨씬 많이 담갔다. 같은.......추천 -
[비공개] 우리는 장사꾼이 아니라 농사꾼입니다. - 행복한 달팽이 No.21
2010년 가을이 되자 배추 한 포기 값이 1만 원을 넘어섰다. 한 포기에 만 오천 원을 육박하는 배추값에 김장을 앞둔 소비자들은 걱정과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매스컴에서는 연일 배추 수급 비상에 대한 소식과 이런저런 전문가들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정부에서 이런 수급 물량의 조절을 위해 하루라도 빨리 배추 수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간도매상이나 영농조합, 대형마트 등지에서는 치솟는 가격에 더 많은 이윤을 바라고 아예 내놓지 않거나 한두 포기씩 제한판매로 물량을 조절하고 있었다. 약삭빠른 상혼에 소비자들은 더욱 화가 났고 주머니가 가벼운 서민 가정은 김장 걱정에 시름만 더해가는 실정이었다. 이때.......추천 -
[비공개] 3번 버스 기사 아저씨 - 행복한 달팽이 No.20
중학교에 갓 입학한 까까머리 우리들은 멀고도 낯선 동네까지 학교를 다니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학교도 가깝고 다들 한 동네에 살아서 집집마다 들르며 걸어 다녔는데 중학교는 달랐다. 추첨을 해서 가게 된 중학교는 워낙 후지기로 유명해서 부모들이 속이 상해서 울 정도인 사립학교였다. 게다가 우리 동네에서 가려면 버스를 두 번을 갈아타야 하는 먼 거리에 있었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어린애들이 머리를 빡빡 깎고 검정 교복에 제 몸뚱이보다 큰 책가방을 들고 학교에 가는 모양새가 부모들은 늘 안쓰러웠다. 속상해하는 부모보다 정작 더 힘든 건 우리였다. 말이 학교이지 맨 처음 바라본 학교는 순전히 깡.......추천 -
[비공개] 등교 거부 -행복한 달팽이 No.19
초등학교 4학년에 올라간 나는 3학년에 연이어 반장으로 뽑혔다. 우리 반에서 3학년 때 반장이었던 아이가 나밖에 없었을 수도 있고 친구들의 눈에 익어서였을 수도 있다. 학생들의 자주적인 선거로 추천을 받고 당선도 된 나는 며칠이 지나 열린 각 학년별 반장 회의에서 여러 선생님과 다른 반장들의 추천으로 4학년 대표도 맡게 되었다. 이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막대한 책임감과 영예를 한 몸에 받은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어린 나에게 조만간 닥칠 비극의 전주곡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상당히 뚱뚱한 체구의 여자 담임선생님은 내가 반장이 되고 나서 며칠이 지나자 이런저런 트집을 잡으며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추천 -
[비공개] 한여름의 목욕탕 - 행복한 달팽이 No.18
사업이 파산하는 바람에 천 원짜리 한 장이 새로울 때가 있었다. 형편이 쪼들리면 지지리 궁상 같은 일들이 더 자주 온다는 걸 실감하던 시기였다. 여름이 되자 어린 아들이 자기도 수영장에 가고 싶다고 연일 졸랐다. 또래 아이들이 물안경에 오리발 등을 챙겨서 수영장이며 워터파크에 가는 모습을 마냥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아이였다. 뜨거운 여름날 친구들은 피서를 간다며 가족여행을 떠나는데 우리 아이들은 집안에만 있자니 짜증이 날 법도 했다. 아이들을 볼 때마다 저려오는 미안함이 나에게는 한여름 더위보다 더 푹푹했다. 이런 상황에서 굴러가는 나의 잔머리는 구차하였고, 이걸 아이디어라고 아내에게 말하고 있는 나는 비루하.......추천 -
[비공개] 구멍 뚫인 야전상의 - 행복한 달팽이N0.17
1985년 11월 신병교육대 야전교육장. 월남전에라도 다녀온 사람일까? 거기 말고는 역전의 용사가 될 군인이 없는 시절인데 산전수전 다 겪은 인상의 교관이 우리 앞에 섰다. 다른 때와 달리 초임 장교가 아니라 그는 상사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제군들! 전우애라는 게 뭔지 아는가? 반드시 총알이 빗발치는 가운데에서만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전우애가 발휘되는 게 아니다. 지금같이 전쟁이 없을 때에도 전우애는 충분히 있다. 형제의 우애보다도 친구의 우정보다도 회사의 동료애보다도 더 끈끈한 전우애는 충분히 존재한다. 함께 훈련받고 함께 고락을 나누면서 생긴 진한 전우애만큼 감동적인 것도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추천 -
[비공개] 급식빵 - 행복한 달팽이 N0.16
1972년 여름. 초등학교 2학년 우리 반에는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친구들이 몇몇 씩 있었다. 학교를 다니다가 중간에 보이지 않는 친구들도 있었다. 지독한 가난 때문에 공부보다는 집안 농사를 돕는 일손으로 고사리 손도 보태야 했기 때문이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 아이들은 점심시간이면 밖으로 나가서 놀다가 들어왔다. 가끔씩 도시락을 싸온다고 해도 뚜껑을 바로 열지 않았다. 도시락 속에는 거뭇한 꽁보리밥과 밥을 밀어낸 공간에 박은 단무지 한 토막이 전부였다. 그런 친구들은 다른 아이들과 함께 밥 먹는 것을 꺼려했다. 거친 꽁보리밥을 한 숟갈 입에 넣고 단무지를 한 입 베어 물고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추천 -
[비공개] 아내가 가장 먼저 가고 싶은 곳 - 행복한 달팽이 No.15
아내에게 자동차가 생겼다. 서울에 사는 작은 매형이 이번에 차를 새로 바꾸면서 전에 타던 차를 그냥 가져가라고 준 것이다. “연식은 조금 됐지만 처남댁이 그냥저냥 타고 다니기에는 괜찮을 거야.” 아내는 장롱면허를 가지고 있다. 대학생 때 딴 운전면허증을 그대로 묵히고 있으니 햇수로도 십 수년은 넘었을 면허증이다. 서울에서 차를 받아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면서 내 머릿속도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과연 운전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부부나 가족끼리 운전교습을 해주는 거 아니라던데. 열이면 열이 서로 싸우고 감정 상한다는데….’ 차라리 돈을 들여 전문 강사한테 시내운전 교습을 부탁하는 게 낫겠다고 결론을 지었다. 자기.......추천